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르겐 하버마스 (문단 편집) == 사상 == 하버마스는 [[막스 베버]]가 도구목적성으로 파악했던 합리성 개념을 2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생존에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기술적 합리성'이고, 다른 하나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우리의 의견을 개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실천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기술적 합리성은 근대 경제와 정치에 있어서 '체계'를 발달시켰고 여기서 과학기술적 지배의 확대라는 형태로 진보가 이루어져 왔다.[* '기술적 합리성'은 막스 베버의 도구목적성 합리성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에 이르러, '생활세계'에 있어서도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발달하여 물음을 주제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어 당사자들 간의 이성적 합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즉, 우리가 개방적이면서 사안에 적합한 토론을 토대로 자유로운 합의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규범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올바른 답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규범적 문제에 대해 상호간의 합의를 이끌어낼 보편타당한 답[* 여기서 '보편타당한 답'이 '절대적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적인 진리'기 때문에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답은 합의에 의해 확정되어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호 주관적 보편성'이다.]이 존재하며 우리는 원칙적으로 이성의 논변적 대화를 통해 그러한 답에 도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버마스의 이러한 주장은 상대주의와 독단주의, 둘 다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생활세계에 있어서, 상호 모순되는 상대주의적 형이상학적 답변들을 배제하며, 그렇다고 자유롭고 이성적인 주체가 혼자서 독단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는 우리의 관점이 가능한 여러 관점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즉, 논의의 주제에 대한 상이한 논변들의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이론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다원주의적 이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이다.(간주관적 특징) 또한 다양한 시점에 우리가 옳다고 받아들인 특정 견해들은 나중에 가서 틀린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주장이나 입장이 아니라 '절차 그 자체'가 바로 최종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알아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절차적 특징) 따라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많은 주관들 사이에서 서로 공통된 합의를 그 답으로 인정하는 '''간주관적'''[* 여기서, 간은 '사이 간(間)'을 말하는 것으로 주관들 사이에서 서로 공통되는 것을 말한다. 즉, "'''상호 주관적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특징과 '절차 그 자체'가 바로 최종 근거가 되는 '''절차적''' 특징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간주관적이고 절차적인 토론에서 우리가 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몇 가지 필수적인 기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진지한 논의의 참여자로서 우리는 논변들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논변의 힘"에 기꺼이 승복할 줄 알아야만 한다. 나아가 우리는 서로를 이성적이지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즉 논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이지만 그럼에도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상대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상호 인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답변에 제한을 가해야 되며, 논변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논리여야 한다. 결국 하버마스에게서 진리란, "논변의 이해와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이성적 사람들 사이의 '''상호 주관적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합의에 의해 이끌어진 '상호 주관적 보편성'이라는 답은 결코 '절대적 진리'라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하버마스를 계몽[*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이성'''으로 절대적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의 전승자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상호 주관적 보편성'이라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벌이는 충분한 논변을 이해하는 데에 이성이 사용되어진다는 점에서, "그 논변과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끔하는 (토론의) '''절차 그 자체'''에 보편적 진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그는 계몽의 충실한 전승자라 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계몽을 비판하는데 왜 이성(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추종하는가에 대한 매우 간략한 요약. 이해가 안되면, 그냥 이렇게 보면 된다. 하버마스는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몽을 비판했지만,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성'의 힘을 '믿으며', 그런 맥락에서 '계몽의 전승자'라고 '평가'받는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